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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Day But Today/오늘 쓰는 어제 일기

[일상] 그런 말은 쉽게 하는 게 아니죠! - 리얼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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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결혼했으니 올해로 4년차 부부.
투닥거리긴 해도 싸움은 잘 없는 우리인데, 엊그제는 눈물 쏙빠지게 다퉜습니다.


*

요즘 벚꽃 시즌이라 집에만 있기 서운합니다.
게다가 저는 일 외에도 사진 찍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이럴 때 안나갈 수 없죠!

그런데 아쉽게도 남편이랑 저는 휴일이 잘 맞지 않아요.
저는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주5일 근무이고, 남편은 평일과 주말에 하루씩 일정치 않은 주5일 근무예요.
휴일이 맞는 날이어도 섣불리 나가기 어려워요.
전 주말 양일 다 쉬니까 하루는 놀아도 하루는 쉴 수 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거든요.
휴일에 저랑 데이트 한다고 종일 보내고 나면 당연히 피곤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가볍게 시간을 보내거나 쉬는 편이예요.

어쨌든, 벚꽃!!
남편이랑 시간도 같이 보낼 겸 시도해보고 싶은 사진도 있었던 터라 벚꽃구경 같이 가자고 했죠.
남편은 고맙게도 흔쾌히 OK! 해줬어요. 그리고  의도치 않게 바로 전날 스케줄이 틀어졌습니다.

아쉽긴 했지만 화가나진 않았어요. 남편의 회사 스케줄이 바뀐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남편도 미안했는지 평일에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있으니 제가 퇴근할 때 데리러 올테니 그 때 가자고 했어요.
저는 찬성했고, 약속한 당일이 됐죠.

저는 약속한 게 있으니 오늘 데리러 오는지 남편에게 물었는데, 다음날 새벽 일찍 스케줄이 있다고 주말에 가자고 해요.
그런데 제가 주말엔 남편도 알고있는 선약이 있어서 그냥 벚꽃은 패스하기로 했어요.

그 다음부터의 대화 내용입니다.


남편님    "퇴근할 때 데리러 갈게요."

Me!        "아녜요 ㅋㅋ 들어가 쉬어용 ㅎㅎ"

남편님    "데리러 갈래. 맘 상했어"

Me!        "응? 왜 자기가 맘 상해요..." (서운..)

남편님    "자기랑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 일 그만두고 다른 거 찾아볼게. 나도 짜증이 나네, 같이 쉴 수 있는걸로 찾아볼게요."

Me!        "알았어요 ㅋㅋ 그만 조를게요 ㅋㅋㅋ"

남편님    "아니, 장난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그만둔다고. 일단 이번달 지나고."

Me!        "네에;;"

...(약 10분 후)

남편님    "그냥 택시 타고 와요, 집이 쓰레기통이네. 아  짜증이 너무 난다"

Me!        "노노노, 그냥 냅둬요, 제가 들어가서 할게요. 자기 그냥 자요. 아무것도 하지마. 컨디션 진짜 안좋은가보다.
                내가 어제 청소하려다가 자기가 너무 피곤해해서 자는데 부시럭거리면 깰까봐 안했거든요."

남편님    "같이 살기 싫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자기만 벌던지, 자기가 그만두던지 하자. 따로 살던지."


하.. 다시 봐도 울컥하네요.

아무튼, 여기까지 대화를 했을 때 퇴근까지 약 1시간정도 남았었는데,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특히 마지막 말에 대답을 안하려 한 것도 있지만, 기가 차 대답을 못했습니다.

저는 높은 확률로 맨 앞의 말이나 끝의 말은 그 사람의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남편의 첫마디와 마지막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이건 내가 잘못 했는지 안했는지를 떠나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자,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나랑 같이 살기 싫다고? 내가 질렸나? 아무리 질렸대도 결혼까지 했는데, 고작 4년만에 이런 식으로 같이 살기 싫어지나?
 아, 여자가 생겼나보다. 뭐 그럼 늦든 빠르든 헤어지게 되어 있으니 그부분은 생각 더 해봤자 소용이 없지. 억측은 밀자.
 내가 보기 싫을테니 일단 오늘은 보지 말까? 그럼 우선 엄마집으로 갈까? 수원에서 일산까지 출퇴근하는데 얼마나 걸리지?
 집에 들러서 옷가지 챙겨나와서 가면 꽤 피곤하긴 하겠네, 그래도 보기싫은 얼굴 보는 것보단 낫지.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남편이 저렇게 화 낼 정도의 일은 하지 않은것 같은데. 내가 왜 나가지?
 시댁이 옆이고, 차도 있으니 남편보고 나가라고 하자. 맘 같아선 차키도 뺏고 싶지만 차가 없으면 출퇴근도 못하니 그건 좀 불쌍하네.'

짧은 시간안에 이렇게 수많은 생각을 거치고 거쳐 혼자 이혼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관계를 끝내는 말은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닐테니까요.


*

막상 퇴근하고 집 앞에 서자 생각은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중나온 남편을 만났습니다.
쳐다보지도 않은 채 집으로 들어왔고, 전 옷도 벗지 않고 짐을 어떻게 챙겨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눈물을 감출 자신이 없었거든요.

남편이 먼저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남편은 의외로 제가 남편을 보자마자 사과할 줄 알았대요.
전 너무 당황했어요. 나는 마지막에 한 막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는데 말이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저한테 사과를 요구하다니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화도 못냈어요.

저는 카톡에 한 말 진심이냐고 묻고, 설명을 요구했어요.
남편은 저와의 약속을 자꾸 펑크내는 게 미안하기도 했대요. 그리고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제가 너무 집안일을 너무 팽개쳐 놓는 것 같아 짜증이 나서 홧김에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저도 컨디션이 나빠 집안이 엉망이긴 했어요. 원래도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해요.)

그래도 나한테 미안하다고 화를 낸다는 건 말이 안되죠. 그건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암요, 미안하다면 미안하다고 해야죠.
그리고! 아무리 짜증나도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지,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울면 지는 것 같아서 울지 않으려고 해도, 뚝뚝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어차피 남편이 뭐라고 말했든 믿어지지 않았을거예요. 그래도 변명이라도 아니라고 해주니 마음이 놓이더군요.
게다가 내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데 남편에게 미안해지는 제 스스로가 싫어집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제가 혼자 이혼까지 했다는 말에 정말 놀랐나봅니다.

남편        '내가 어떻게 그래, 자기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도 난 안그래요.'

더 화내고 싶어도... 이렇게 말하면서 제 눈물에 쩔쩔 매는데 어떻게 더 화를 내요.
눈물은 계속 나오지만 그만 해야죠. ㅎㅎ

Me!        "알아둬요. (헉, 너무 고압적인가?) 아니, 이건 부탁이예요. 나랑 살기 싫단 말을 할 땐 이혼 서류까지 다 준비하고 말 해요."

남편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말한건 미안해요. 너무 짜증났어. 안그럴게."

Me!        "저도 미안해요. 이유야 어쨌든 잘못했어요."

남편        "그렇지~ 잘했다~ 자, 이제 밥 먹자. 오늘은 그냥 시켜 먹을까?"

Me!        "전 안먹을래요. (다이어트할거라 저녁 금식 중이거든요.)"

남편        "왜~ ㅠㅠ 같이 먹어 줘라."

Me!        "...(안 먹으면 아직 화가 나서 안먹는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알겠어요."


솔직히, 화가 난 부분이 서로 달라서 더이상 싸워봤자 소모전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상정한 최악의 상황이 전혀 아님에 감사하며 서로 사과 주고 받고 사실상 마무리가 됐어요.

아, 그리고 저 배고파서 저녁 먹은거 아니예요! 진짜예욧!!


*

솔직히 아직도 이해 안되고 따지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어차피 다시 끄집어내서 얘기해봐야 완벽히 해소 될 리 없겠죠.
또 다른 싸움이 될 뿐.

제가 정말 용서가 안되는 부분은 '같이 살기 싫다'라는 말 한마디였어요.
그러지 않을거라 믿지만, 만약에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저는 남편을 믿을 수 없어질거예요.
그럼 우리 관계는 나빠질테고, 그 뱉은 말처럼 '같이 살기 싫어'지겠죠.
그래서 그 말이 가벼운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부분은 사과도 받았고 제대로 알아줬다고 믿고 다른 부분은 넘어가기로 합니다.
물론 남편도 저와 마찬가지로 제게 아직 서운하고 더 따지고 싶은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만, 넘어가는 것이겠죠.

이런식으로 진행된 우리부부의 다툼은 집을 나가지 않고, 큰 소리내지 않고 잘 마무리 됐습니다. 휴우...


*

화해했으니 시간도 맞고, 날씨 좋은날 가벼운 데이트하러 가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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