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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Day But Today/오늘 쓰는 어제 일기

[일상.마리는훼이크] 나의 짧은 임신기 #7. 유산 수술, 그리고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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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알자마자 기록한 글들인데, 안정기가 되면 공개할 예정이었어요.

결과는 유산으로 끝났지만 경험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정리하고 다듬어 남깁니다.


마리는 훼이크 (나의 짧은 임신기)

#7. 유산 수술, 그리고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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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유산은 하혈과 함께 자연적으로 배출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나보다.

나의 경우 전혀 하혈이 없고 성장이 멈춘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회사에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유산휴가로 수술 당일부터 5일간 휴가를 받았다.


특별히 준비할 일은 없었고, 수술 전 8시간 물을 포함해 금식만 하면 됐다.

수술 예약을 오전으로 잡아 8시간 금식은 그리 힘들진 않았다. 목이 좀 말랐을 뿐.

평소에 물을 그리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었는데 목이 타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초음파로 진료를 본 후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생에 처음으로 겪는 수술대였다.

시술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수술'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공포감이 없지는 않았다.

낙태 혹은 유산하면 아기의 몸을 난도질 해서 끄집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다행히(?) 빈 임신낭이라 어떤 생명체를 난도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위안 삼았다.


아직 더운데 입원실에 있는 이불은 두툼했고, 수술할 때 입는 수술복은 그냥 캉캉치마였다.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갔겠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했다.

내 혈관이 얇은 편은 아니라 피 뽑을 때 고생해 본 적이 없는데, 주사바늘을 3번만에 꽂았다.

다리를 벌린 채로 팔 다리를 묶고, 초음파 화면을 확인했다. 

간호사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리고 수면마취를 위해 링거를 꽂자 어지럽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순간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


몽롱한 상태에서 간호사가 나를 부축해 수술대에서 내리는데 배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파왔다.

아주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머리와 귀가 웅웅거렸고, 내 팔다리가 붙어있는지 움직이는지 감각이 없었다.

간호사 목소리가 들리자 난 마치 옹알이가 시작된 어린아이마냥 중얼거렸고, 간호사는 나를 어르고 달래서 수술대를 내려왔다.

"배, 배 아파, 아파요" "그쵸, 많이 아프죠. 다리를 내려볼게요." "다리를 내려요." "네, 잘하셨어요. 계단을 내려올건데 우선 앉으세요." "우선 앉아요." "그래요. 이제 천천히 한발씩 내려오세요." "내려가요." "제가 부축할거예요. 기대서 걸어요." "걸어요"

수술실 바로 옆방이 입원실이라 열걸음 채 걷지 않았다.

입원실 침대에 누워 배가 너무 아파서 식은땀까지 나고, 아까는 그렇게 두툼해보였던 이불이 얇게 느껴졌다.

간호사가 링거를 놔주자 정말 5분도 채 되지 않아 통증이 좀 가셨다. 마취가 깨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링거를 맞는 약 1시간 동안 나는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고, 최군은 옆에서 내가 깰 때마다 물로 목을 축혀주었다.


링거를 다 맞고 금방 퇴원했다. 5일 정도 되는 약을 처방받고, 2~3일간 소독하고 주사 맞으러 통원하기로 했다.

내가 정신 차릴 동안 최군이 부지런히 움직여 수납하고, 진단서로 약까지 타 왔다.

우린 아직 국민행복카드가 도착하지 않아 우선 개인 카드로 결제한 후 다음에 국민행복카드로 다시 결제하기로 했다고 전해들었다.

차를 타니 금새 잠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최군이 마트에 들러 장까지 봐 왔다.

퇴원하면서 든 생각인데 수술하는 날 최군이랑 시간이 맞지 않았다면 집에 가는 내내 정말 많이 서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최군은 일부러 내 휴가 기간동안 같이 쉴 수 있도록 회사에 출산휴가와 연차를 써 일정을 조율한 듯했다.

어차피 난 집에서 가만히 있을텐데 괜히 무리해서 휴가 쓰게 한 것 같아 미안해서 평소에 못 만나던 친구라도 만나고 오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최군은 정말 안 나가고 5일 내내 내 옆에서 계속 알짱댔다.

아, 물론 지극정성으로 날 간호했다거나 그런건 절대 아니고 정말 그냥 계속 알짱댔다.

그런데 그 덕분에 내가 혼자 생각할 시간이 적어졌고, 안좋은 기분도 덜 들었다.

최군이 생각에 빠지면 깊이 빠지는 나를 알아서였는지, 그냥 자기가 놀고 싶어서 였는지는 속내는 모르겠지만.

그냥 고맙고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덕분에 내가 덜 힘들어 한 것 같다고.


솔직히 첫날은 마취기운이 남아있어서였는지, 수술한다고 긴장해서였는지 정말 힘들었다.

저녁부터 컨디션을 회복하기 시작해서 2~3일 지나니 거의 컨디션이 돌아왔다.

그래서 최군의 아이디어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어차피 얻은 휴가를 즐겨보기로 했다.


*

간단한 세면도구와 핸드폰 충전기, 속옷과 편한 옷을 한벌 씩 챙기고 무작정 나갔다.

바다가 보고싶다니 도착한 곳은 제주도.

비행기도 예약 안하고 무작정 공항으로 가서 구매했다. 운 좋게 오래 기다리지 않고 저렴한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

보통은 바다 하면 강릉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강릉은 지금 날씨가 좋지 않단다. 마음 같아서는 여권을 사용하고 싶다는 말에 최군을 워워시켰다.

이번 여행의 목적에 맞도록 바다가 잘 보이고 깨끗한 호텔을 빌렸다.

급조된 여행이 좋은 이유는 극성수기가 아니라면 저렴하게 좋은 숙소와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 바다가 보고 싶었다.

어릴 적 바다와 가까이 살아서 였는지 못견디게 바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물놀이를 즐기지 않아도. 오히려 물놀이는 피하는 편이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지만, 어쨌든 바다가 보고 싶었다.

좀 더 정확히는 갯벌 말고 수평선과 지평선이 맞닿고 하늘의 구름까지 찰랑이는 깊고 파도가 적절히 이는 검푸른 바다를 보고싶었다.

비행기에서, 숙소에서,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서 아침부터 낮까지, 낮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밤에, 또 한나절간 앉아서 바다만 보이면 바라봤다.


날씨가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찾을 수 없었다. 그라데이션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다는 평온해 보이다가도 그로테스크해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공포가 일다가도 차분해졌다.

당연히 컨디션이 여행하기 적합할 리는 없었지만 무리한 스케줄도 아니라 참을만 했고, 또 좋으려고 애썼다.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바다도 실컷 봤고, 호텔도 마음에 들었고, 조식도 맛있었고.


*

지나고 나니 한 달 남짓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마리는 훼이크였지만 아직은 잘 설명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얻은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수첩을 뒤지다 초음파 사진을 발견하면 아직은 움찔하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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