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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이자, 한때 룸메이기도 했던 친구 베이비양.
뜬금없이 밤중에 "나 있잖아, 요즘 정말 잘 지내는 것 같아. 행복해."라는 톡으로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유인 즉슨, 좋은 사람 만나 연애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것을 함께 이야기 할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밤 중이라 술주정 같이 들리겠지만, 술이 아니라 커피를 마셨으며 아주 멀쩡한 정신이라고 베이비는 굳이 강조해서 말했죠.
그 대화는 꽤 즐거웠습니다.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 상대적인 행복으로 위로를 얻기 위함도 아니었거든요.
베이비가 그 날 느낀 행복은 그냥 문득, 갑자기 깨달아지는 행복이었나봅니다.
그 일로 우린 좋은 일을 더 좋게 만드는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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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새삼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발 물러나 관찰하듯이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내게 "나 행복해"라고 말을 걸어 온 적이 또 있었던가' 하고 헤아려보게 됐습니다.
있긴 하지만 막상 기억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것 같아요.
최군한테도 같은 질문을 해봤는데, 최군은 아예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너무나 궁금하지만 알아볼 방법이 없는게 참 아쉽네요.
그럼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나 행복해"라고 행복을 자랑하는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봤어요.
베이비양처럼 어느날 문득, 갑자기 행복감에 젖어서 자랑하고 싶어지는 일이요.
네,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 이야기 대상이 주로 최군이었는데, 막상 최군은 저희 행복자랑이 기억에 남지 않았나봅니다. ㅎㅎ
베이비양이 많은 사람들 중 제게 행복을 자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도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 행복해"라고 하면 공감도 못 얻고, "염장지르냐!" 하고 화만 돋구게 될테니까요.
아! 이게 "나 행복해요~"라고 자랑하고 다니지 않는 이유인가봅니다. 듣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수도 있으니까요.
잘못하면 눈치없는 사람에 미운털 박히기 십상입니다. 까딱하면 '그런걸 가지고 행복해?' 하며 나의 행복이 격하될 수도 있고요.
또 하나!
제가 베이비의 행복을 깎아내리지 않은 이유는 제 행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베이비가 행복한 이유를 말할 때 저도 같이 기분이 좋아졌거든요. 이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내 친구라니! 하고요.
저 지금 엄청 당연한 얘기인데, 어마무시하게 대단한걸 깨달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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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써내려가다보니 행복에 대해 추론하는 글이 되었네요.
기왕 시작한 거 결론까지 내보렵니다.
행복을 자랑코자 한다면 이 2가지의 조건을 지켜야 합니다.
1. 나와 행복의 가치가 비슷한 사람에게 자랑할 것.
2. 그 사람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때 자랑할 것.
어찌됐건 나한테 자랑하는 베이비 너는 혹시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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