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다 할 예고도 없이 새벽부터 속이 끓어오르면서 속이 녹는 듯이 괴로워 잠을 설쳤습니다. '입맛이 없어서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했더니 배고파서 그런가' 생각하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속이 쓰리니까, 겔포스." (응???)
빠르고 일시적이더라도 잠들기 위해 상비약통에서 제산제를 한 포 뜯었습니다. 약효가 돌면서 겨우 잠들 수 있었지만 제산제는 답이 아니었나봅니다. 이유도 모른 채 아프고, 결국 출근도 못하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못 먹고 그러진 않는데, 먹지도 못하겠고, 생각나는 대로 먹은 제산제 때문인지 설사까지 동반. 서있기는 힘들고, 누워도 앉아도 아파서 '공중에 떠 있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ㅎㅎ)
말 그대로 아파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꼭 병원 문이 안 열려 있을 때 이렇게 아픈걸까요.
결국 자고있던 남편에게 매달리니 남편이 같이 고민 해 줍니다. 일단 먹기가 힘들다고 하니 아침으로 죽을 주문해 줍니다. 먹든 안먹든, 먹고자 할 때 먹을 수 있도록 준비는 해 줍니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친 저를 위해 블라인드를 쳐서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하고, 남편은 조용히 본인의 할 일을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질 않자 남편은 정석대로 체온계를 가져대 댑니다. 37.8도. 열이 나서 아픈거였습니다. 열 나는 증상이 다 있었는데, 저는 왜 열 나는 줄 모르고 있었을까요. 평소 남편이 아프면 체온계부터 드는 저인데요 ㅎㅎ
마침 집에 있는 해열제가 떨어졌습니다. 남편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 해열제와, 죽도 못 먹는 저를 위해 곡류가 들어간 따뜻한 라떼를 디카페인이라며 사서 밀어줍니다. 미안하게도 한 모금도 못마셨지만요 ㅎㅎ 어쨌든 그렇게 해열제를 먹고 좀 자고나니 상황이 일단락 되었습니다.
*
병간호.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누군가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물어본 적도 있는데 정확히 답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제가 아플 때 하는 행동을 기억해뒀다가 매뉴얼처럼 따라하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병간호의 본질은 사실 가벼운 심부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건강한 일반인이 가끔 앓을 수 있는 가벼운 병 정도의 간호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심부름 대기조 - 그냥 옆에 있어주기
병간호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을 때,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추측컨대, 그냥 옆에 있어주는 건 심부름 대기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그냥 옆에 있는다는건 아픈 사람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저는 멍청이 아니, 아픈 사람 입장에서도 그건 할 짓이 못 됩니다. 아파 죽겠는데 누가 옆에서 부담스럽게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으면 못 쉴 것 같아요 ㅎㅎ
하지만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누군가 그냥 근처에 있으면서 본인의 할 일을 하기만 해도 의지가 되는 건 맞습니다.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누군가 응답을 해 줄테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단어 선택이 감동적이진 않지만, 마음의 위안은 바로 이 심부름 대기조에서 오는 게 아닐까요? ㅎㅎ
(요약: 환자 마음의 위안 =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심부름 대기조)
2. 생각 심부름 - 대신 구체적으로 생각해주기
아프면 정상적인 사고가 잘 안되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저만 해도 아프니까 단순하게 생각해서 판단하고, '공중에 떠 있으면 안아프려나' 같이 당장은 쓸모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거든요 ㅎㅎ 평소라면 안 할만한 실수를 하고, 몸이 힘드니 실수를 바로잡을 기운이 없고, 상황 해결이 안되니 짜증이 나고, 그러다보면 괜시리 서러워지는겁니다..
그래서 아플 때는 뭔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보다 좀 더 수월하게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 대신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주는 생각 심부름인거죠.
3. 식사 심부름 - 대신 식사 준비해주기
누구나 병간호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일이죠. 아프면 먹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병이 나면 평소에 먹던 음식이 넘기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식사까지 준비하기란 정말 난이도 높은 일입니다.
아플 때는 꼭 죽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입맛 없으면 죽도 먹기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따뜻한 국물(고기나 야채 육수)을 먹어서 수분과 영양을 보충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배가 아플 땐 따뜻한 오트밀도 좋은 선택이라고 합니다.
4. 기타 심부름 - 대신 움직여주기
그 외에도 아프면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것들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침대에서 끙끙대고 있다가 목이 마른데 물이 없다면 주방에서 물을 가져다 주고, 약이 없으면 약국에 다녀와 주는 정도의 심부름이요. ㅎㅎ
만약 병원에 간다면 택시를 불러 같이 이동해주고, 수납이나 약을 타는 등의 자잘한 심부름을 해 줄수 있겠죠. 사실 멀쩡할 땐 어렵지 않고 당연한건데, 아프면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고, 당연한 게 어려워지는거잖아요 ㅎㅎ 그래서 대신 움직여주는 겁니다.
*
써 놓고 보니 굉장히 당연한 일이군요. 하지만 저는 그 당연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ㅎㅎ
누군가 병간호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굉장한 걸 하지 않아도 되고, 이 사람이 나아지는 데만 신경쓸 수 있도록 자잘한 심부름을 해 주는것. 그게 병간호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안아프면 제일 좋구요.
'No Day But Today > 오늘 쓰는 어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일기] 효도 관광은 패키지로, 패키지 관광은 노쇼핑! (0) | 2024.04.17 |
---|---|
[어제일기]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 (0) | 2024.03.19 |
[어제일기] 소니 HDR-CX900 데려오기 (장비 구매시 고려사항) (0) | 2024.03.08 |
[어제일기] 기록하는 습관의 변화 (0) | 2024.03.04 |
[어제일기] 곰팡이 제거하기 (1) | 2024.02.21 |